남편이 워낙 밀리터리, 그 중에서도 특히 2차세계대전 매니아라 (도데체 어떻게 하면 그런 것의 매니아가 될 수 있는거지.....) 허구헌날 넷플릭스에서 2차세계대전 다큐 보고 얼마 전 친정엄마찬스로 둘이 영화 보고왔을 때도 당연히 미드웨이 봤고 낙곱새에서 저녁 먹으며 진주만 어쩌고 태평양전쟁 어쩌고, 여튼 각지에서 벌어진 전투들의 연대기를 줄줄 읊으며 들려주는데 -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나도 갑자기 미드웨이를 보고나니 (개인적으로 재밌었음) 그 당시 역사를 좀 더 자세히 알고싶은 마음이 생겨 아들 재워놓고 영화 진주만을 다시 보던 찰나. 퇴근한 남편이 들어오더니 경악을 금치 못하며 왜 이런걸 보고 있냐고... 더 퍼시픽을 봐야한다길래 난 밴드오브브라더스도 잔인하다고 해서 못봤다, 고 항의했으나 어느새 더 퍼시픽을 찾아 틀고있는 남편과 함께 보기 시작하여 총 10회 중 2회만 남겨놓고 있다.
지금도 남은 2회 보려고 남편의 귀가를 기다리고 있는 중... .
난 영화관에서 올드보이 보다가 울며 뛰쳐나간 전적이 있고, 태극기 휘날리며 보면서 너무 충격을 받았었고 (구체적인 장면은 굳이 다시 말하여 떠올리지 않겠다.. 이미 머릿속엔 떠올랐지만 ㅠㅠ), 공포영화는 말할 것도 없고 (증오함) 전쟁영화도 잔인하고 쓸데없이 자세하고 사실적인 부상/죽음 묘사와 신경을 긁는 긴장감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꺼리는 성향인데 (라이언일병구하기도 재밌었으나 보면서 힘들었음) 더 퍼시픽을 보면서 조금 무뎌졌다. 어제도 같이 보다가 예전 같았으면 등돌려 머리를 감싸안고 괴로워했을 잔인한 장면이 나와 남편이 순간적으로 나를 돌아봤으나 내가 눈 하나 깜짝 안하고 화면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어서 좀 충격 받은 듯. 잔인한 장면이 나올 때마다 "씨지, 씨지"라고 해주는 남편의 응원(?)의 덕도 컸다. 그래, 저거 다 씨지지.
근데 예전엔 뭐 CG인거 모르고 봐서 싫었었나. 모든 영화는 다 허구이고 연출이고 분장이고 연기라고 생각하면 사실 견디고 볼 수 있다.
다만 특히 전쟁영화의 경우 그 참혹함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과 역사에 기반한 재연이라는 것이 끔찍했고 괴로웠는데, 더 퍼시픽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끔찍하다. 인간이 지을 수 있는 가장 큰 죄악은 전쟁이라는 생각을 굳혀준다.
하지만 나라를 위해 싸운다는 사명 하나로 자원입대를 하고 본인이 죽을 걸 알면서도 총알과 포탄이 빗발치는 전장 속으로 뛰쳐들어가는 군인들. 정말이지 상상을 초월하는 잔인함을 보이는 일본군. 전투가 거듭될수록 피폐해지고 잔인함과 죄책감에 무뎌지는 청년들. 아들을 전쟁터에 보내고 하루하루 일상을 이어가야 하는 어머니들. 어떻게 저런 상황에서 살아 돌아왔는지 정말 존경스러울 지경의 참전용사들, 그리고 그들이 평생 지고 살아갔을 기억의 무게와 흉터들. 그리고 정말 무고한, 전쟁과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았지만 가장 큰 피해자였던 민간인들....
더퍼시픽은 신체적 잔인함보다 내게 이런 면들을 더 전달해줬고, 가늠할 수도 없는 그 심경들이 너무 아팠고, 그래서 나도 모르게 빠져서 보게 되었다.
갑자기 내가 왜 전쟁 미드를 보게 됐는지 생각 정리 좀 하고싶었는데 남편 왔네.. 오자마자 손씻고 더퍼시픽 틀고 있어서 마무리는 없다.
더 퍼시픽 오늘 다 보고 밴드오브브라더스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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